패솔로직 2 엔딩 후기 겸 리뷰
by Golden Goose
플레이타임 29시간만에 1회차 엔딩 봤다......
0. 총평
개인적으로 아주 잘 만든 웰메이드 게임이라고 느꼈음... 한국어 지원을 해주지 않아서 (현재는 한글 패치가 있다.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국내에서는 좀 덜 알려진 느낌이 있는 듯한데 매우 수작이니 생존 및 약한 공포 요소를 견딜 수 있는 게이머라면 해보기를 꼭 추천하고 싶은 게임이다
“ 당신은 모두를 구할 수는 없습니다. ”
게임 소개말이 정말 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게임을 묘사하는데, 일단 <패솔로직 2>의 기본적인 골자는 역병이 도는 마을에서 총 12일간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가 되는 게임... 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 요약이 ‘맞긴 맞는데... 고것이...’ 싶은 요약이라는 거다...
역병이 도는 마을? 맞다. 총 12일? 맞다.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뛰어다니는 의사? 맞다. 하지만 보통 게임을 많이 해본 게이머라면 이 세 가지로 그려지는 게임의 느낌이 있을 텐데, <패솔로직 2>는 그와는 거리가 멀다. 이 게임은 아주 하드코어한 난이도의 생존 요소를 밑바탕으로 깔고 가는 미스터리 오컬트 공포 메타적 오픈월드 RPG (그런데 자유도가 낮은) 다!! (이게 뭔 소리냐 싶겠지만 진짜다...)
1. 게임성 뜯어보기
하나씩 간단하게 스포일러 없는 선에서 뜯어보자면...
1) 하드코어한 난이도의 생존 요소
<패솔로직 2>는 기본적으로 생존 게임이다. 어째서 게임 태그에 #생존이 가장 먼저 붙어있지 않은지 의아할 정도다. 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의 체력/면역력/피로도/허기/갈증 총 다섯 가지 수치를 관리해야 한다. 관리해야 하는 종류 자체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각각이 유기적으로 연계가 되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음식과 물을 구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이 게임은 가능하면 전투를 피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어 음식은 대부분 상점 구매 혹은 게임 특유의 물물교환 형식으로 구해야 하는데, 직접 해보면 바로 느껴지겠지만 이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게다가 물도 후반으로 갈수록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내가 마시는 용도 뿐만 아니라 약을 만드는 데에도 말 그대로 ‘물 쓰듯이’ 써야 하기 때문에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난이도가 굉장히 높다. (오죽하면 게임에서 권장하는 최고 난이도의 클리어율이 6퍼센트대다. 맨 위의 Imago 도전과제...)
2) 미스터리 오컬트
스토리적으로 일단 미스터리물의 형식을 띤다. 주인공은 도시에서 유학하다가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름으로 몇 년 만에 고향에 내려가게 되는데, 가보니 아버지는 살해당했고 그 범인으로 자기가 지목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30분 안에 확인할 수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초반부는 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물적인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또한 ‘마을’ 특유의 신화적, 미신적, 향토적, 오컬트적인 요소들이 게임 내내 굉장히 부각되는데 이 또한 세계관을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다.
3) 공포
제대로 된 공포 게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공포 요소가 좀 있는 편이다(게임 소개 자체도 호러 RPG라고 써 있다). 갑자기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점프스케어 같은 것은 (거의) 없지만 전반적으로 음산한 분위기와 BGM, 그리고 플레이어 캐릭터를 적대시하는 선공형 적이 꽤 많아 공포스러운 느낌이 강하다. 전투를 통해 이 적들을 쉽게 깔아뭉갤 수 있거나, 혹은 레벨업 요소 같은 거라도 있으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생존 게임의 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레벨업도 없고 전투적으로도 그다지 강해질 요소가 없다. 게다가 위에서도 살짝 언급했듯 애초에 전투를 피하도록 설계가 된 게임이다. 민간인을 살해하거나 약탈하면 평판이 내려가고, 평판이 내려가면 수많은 패널티가 딸려온다. 민간인이 아닌, 나를 적대시하는 선공 적은 평판을 떨구지 않지만, 무기의 내구도는 종잇장 수준이고 이 내구도 수리에는 아이템이 많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아이템은 물물교환을 통해 훨씬 더 좋은 아이템들로 교환을 할 수가 있다... 결국 전투 하지 말고 피해 다니라는 거다! 그러니 몰래 도망다녀야만 하는 상황의 연속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4) 메타적
이건 스포일러 없이는 말할 수가 없다... 아무튼 메타 요소 있음 꽤 강함
5) 오픈월드 RPG
맵이 상당히 넓다. 대충 지도에 그려져 있는 것보다도 더 넓은 듯한데, 어디까지 열려있는지 끝까지 가보지는 않아서 모르겠다. 아무튼 체감상으론 정말 넓었고,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되기 때문에 더 넓게 느껴질 수도 있다.
6) 그런데 자유도가 낮은
★★★ 이 게임의 핵심이다. 이 게임은 오픈월드 생존 RPG임에도 결코 자유도가 높지 않다. 이런 종류 게임을 좀 해본 게이머라면 엥? 싶겠지만 <패솔로직 2>는 리얼타임 설계를 통해 플레이어의 자유도를 강하게 제한한다. (그 자유도의 제한 자체가 <패솔로직 2>의 아이덴티티라고 해도 된다.)
총 12일이라는 시간 제한이 기본적으로 존재하고, 게임 속 시간은 분 단위로 흘러가는데 이게 리얼타임과 대응해서(1일차에는 인게임 10분이 리얼타임 40초) 그대로 흘러간다. 심지어는 후반부로 가면 1일차의 두 배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데, 해결해야 할 퀘스트가 정말 셀 수도 없이 많이 튀어나온다! 게다가 우편으로 퀘스트 완료... 이런 기능도 존재하지 않는다. 무조건 퀘스트 장소에 도착, 대화.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 이 구조로 진행되는 퀘스트라서, ‘이동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배하느냐가 엄청나게 중요해진다. 오픈월드 시스템 자체가 자유도를 제한해버리는 셈이다.
퀘스트의 양이 무척 많아 애초에 모든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무엇이 메인 스트림에 영향을 주는 메인 퀘스트인지 서브 퀘스트인지 언질도 없다. 각각 시간제한도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매 순간마다 어떤 퀘스트를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할지, 어떻게 움직여야 가장 효율적일지 동선을 짜며 선택과 집중을 강요받게 된다. 이... ‘여러 방면으로 계속해서 쪼아대는 느낌’이야말로 <패솔로직 2>의 특징이다. 이것이 <패솔로직 2>를 특별한 오픈월드 생존 RPG로 만든다.
7) 그 외, 스토리적 의외성
내가 <패솔로직 2>를 하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 ‘아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말걸...’ 인데, 이 말은 결국 ‘이럴 줄 몰랐던 상황이 연속 발생’한다는 뜻이다. <패솔로직 2>는 이런저런 게임을 좀 많이 해본 게이머라면 흔히들 예상할 게임적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다. 클리셰 파괴 수준도 아니고, 그냥 클리셰라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 채 만든 게임처럼. 분명 쓸모가 있을 거라 생각해서 모아뒀던 아이템이 24시간만에 휴지조각이 되는가 하면, 왜 존재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던 아이템이 게임 후반부에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럼 아이템을 무조건 많이 모아두면 되지 않느냐? 싶을 수 있는데, 위에서도 말했듯 이 게임은 시종일관 시간적 압박으로 플레이어를 조여오기 때문에 아이템을 모으는 데에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가 없다. 게다가 디아블로식 바둑판 인벤토리 시스템을 사용해 들고 다닐 수 있는 아이템의 갯수에도, 저장할 수 있는 갯수에도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당황스러운 일들이 스토리 전개로 인해 발생한다! 당최 어느 방향으로 튈 지 알 수 없는 스토리 전개가 <패솔로직 2>에 의외성을 부여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게 만든다.
내가 <패솔로직 2>의 게임성에 감탄한 게 바로 이런 부분이다. 게임의 그래픽은 좋은 편이고, 최적화도 그럭저럭 봐줄만 해 대충 보기에도 괜찮은 게임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세히 뜯어보면 인디게임인지라 게임 개발에 엄청난 코스트를 쏟아붓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띄는데, <패솔로직 2>는 그 적은 코스트로 수많은 스토리적 분기점을 뽑아낸다. 오직 리얼타임 오픈월드라는 시스템만으로 말이다. 설계 자체를 영리하게 잘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추가로 게임성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버그인데... 커뮤니티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아 나와 같은 오류 사례가 많은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작은 버그들이 많아진다. 그런데 이게 쌓이고 쌓여서 너무 큰 오류가 되어서 나는 하마터면 엔딩을 못 볼 뻔했다... 이런 부분은 조금 아쉬운 편. 다행히도 세이브-로드로 해결이 되었지만 저장할 수 있는 위치가 한정적인 시간제약 게임 상 이마저도 압박감을 준다... 아무튼 어찌저찌 엔딩은 볼 수 있었으니 일단 넘어가기로 한다.
2. 스토리 살펴보기
이제 본격적으로 스토리를 언급하려고 한다. 그와 함께 위에서 말하지 못했던 게임적인 측면들도...
이하 엔딩까지 스포일러 포함
1) 게임의 주제
<패솔로직 2>는 현대 의학과 민간 신앙의 충돌을 그린 이야기이다. 주인공이 ‘창점술사Haruspex’인 것에서 사실 알아차렸어야 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창점술사의 ‘창’이 던지는 창... spear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창자’의 창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동물 사체의 내장으로 점을 보는, 그야말로 민간 신앙과 민간 요법의 화신이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메스를 사용하는 외과의로서 양의학을 수호하기도 한다. 창점술사는 토착적 요소가 강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도시에서 수학해 양의학을 배웠고, 그렇기에 두 가지 특성을 모두 지니는 것이다. 이 점이 스토리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마을’은 둘로 나뉘어 있다. 토착 신앙의 숭배자들(“혈족”)과 공장을 가동하려는 현대인들로. 이 둘은 억지로 ‘마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있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그리고 이 게임의 엔딩은 정확하게 둘로 나뉜다. “혈족”을 선택하느냐? “현대인”을 선택하느냐? - ‘모래 역병’의 발병 자체가 둘 사이의 골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선택지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엔딩이 둘 중 하나라는 것은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다.
‘모래 역병’은 ‘혈족’을 감염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며, 게임 속에서 자아를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 ‘모래 역병’은 개인이라는 자아가 없는 혈족을 내버려두고 ‘개인’인 현대인을 감염시킨다... 고 묘사되지만, 사실 진실은 이러할 것이다.
말하자면, ‘모래 역병’은 풍토병이다. 황소 도축업으로 살아가는 마을 지하에는 도축된 황소들의 피가 고이게 되었고, 그 피는 썩어들어가 결국 질병을 유발했다. 하지만 본래가 황소를 도축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혈족들’은 그에 면역이다. 황소를 도축하고, 그 피를 받아 마시며 연명했기 때문이다. (A형 간염 면역마냥... 그런 방식으로 어릴 때부터 항원과 계속 접촉하면서 항체가 생겼을 것) 따라서 창점술사는 그들이 마시는 황소의 피로부터 ‘만능약’을 제조할 수 있게 된다. (이건 아마도 항체 치료제와 같은 방식일 것. 백신이 아니라 치료제)
이 진실을 게임은 여러 은유를 거쳐 마치 환상문학처럼 그려낸다. ‘모래 역병’이 토착민인 혈족을 감염시키지 않는 이유를 ‘그들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묘사한다. 사실 혈족은 자신들만의 폐쇄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여 그 안에서 황소의 피를 마시는 원시 문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감염되지 않는 것이다. (따지자면 ‘그들이 공동체이기 때문’이 맞기는 하다.) 또한 혈족 중 하나인 약초 신부는 옷을 벗고 땅 위에서 춤을 춘다. 옷을 입지 않고 머리를 산발한 채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가히 판타지적이라 혹시 정말 전설 속의 괴물, 혹은 판타지적 요소인가? 싶을 수 있지만 이들도 사실은 그냥 평범한 인간이다. 혈족이기 때문에 땅에서 스며나오는 모래 역병에 감염되지 않을 뿐이고, 굳이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이유는 땅을 스치듯 춤을 춰서 옷이 다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판타지적 눈가림은 아주 많은데, 이 게임의 모든 판타지 요소들은 이렇게 현실로 해석이 가능하다. 게임 후기나 소개들을 보면 ‘판타지 요소 있음’이란 얘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사실은 그게 판타지가 아닌 것이다. 이 게임은 지극히 현실을 기반으로 해서 만들어졌으며, 그것을 판타지적 은유로 눈가림하여 보는 사람으로서는 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만들 따름이다. 이 스토리텔링 능력이 정말 경이롭다....
(단 하나, 현실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는데 그게 바로 다면체Polyhedron다. 하지만 다면체는 제작자가 공식적으로 맥거핀이라고 언급했다. 즉, 예외여도 상관없다는 것.)
게임의 큰 줄기는 이렇게 보면 단순하다. 하지만 “혈족을 선택하느냐? 현대인을 선택하느냐?”는 양자택일의 물음은 결국 “민간요법? 현대의학?”과 같은 의미를 가지며, 더 나아가서는 “오래된 풍습을 지켜내느냐, 현대식 문물을 받아들이느냐”까지도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는 현대인인 우리로서도 쉬이 결론내릴 수 없는 질문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게임은 세이브 파일 하나로 양쪽 엔딩을 다 볼 수 있게 구성이 되어 있고, 양쪽 모두 볼 가치를 충분히 제공한다. 반드시 둘 모두 보길 추천한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이 게임에 태그로 달려 있는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위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 이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은 퀘스트를 던져주며, 그 퀘스트를 진행하느냐 마느냐로 세세한 스토리적 분기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의 엔딩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엔딩을 가르는 등장인물들은 후반에야 등장하며, 그들은 역병에 감염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실 <언틸 던>이나 <다크 픽처스 앤솔로지> 시리즈,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등 플레이어가 직접 고르는 수많은 선택지를 통해 스토리가 바뀐다는 #선택의 중요성 게임들이 피하지 못한 비판이 ‘그래봤자 과정만 좀 달라지고 엔딩은 거기서 거기던데?’다. 그리고 <패솔로직 2> 또한 따지고 보면 그런 부류다. 그럼에도 나는 이 게임의 2회차를 진행하고 싶어졌다. <패솔로직 2>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결국 스토리텔링의 문제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30여 명의 등장인물, 그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궁금하게 만드느냐, 그 스토리텔링 싸움에서 <패솔로직 2>는 승리했다. 1회차에서 나는 내가 생사를 가를 수 있는 등장인물 24명 중 여덟 명밖에 구하지 못했다. 다른 열 여섯 명의 이야기는 영영 내가 모르는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설령 그들이 살아남아봤자 엔딩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대도 그들을 살려놓아 보고 싶다. 사실 살리는 것만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 뒷이야기를 모두 알려면 3회차까지는 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1회차 플레이가 30시간을 소요하고, 게임이 가하는 부정적인 압박감이 상당한지라 3회차까지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든 중요한 건 심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2회차를 하고 싶게 만드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패솔로직 2>는 #선택의 중요성 키워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좋은 게임이다.
(내 선택지 하나하나가 의미 없지 않았다는 듯이 대사가 바뀌는 등장인물들도 이 생각에 한몫 했다. ↓)
2) 메타 요소
추가로, 메타적인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게임은 대체로 현대 의학과 민간 요법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그보다 한 단계 위에서 ‘극장’과 ‘배우’라는 컨셉을 가져간다. 즉 ‘플레이어인 나’와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창점술사’를 분리해서 인식한다는 것이다. ‘플레이어인 나’는 ‘창점술사’라는 배역을 부여받아 ‘마을’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다는 컨셉인데, 이 컨셉이 제법 흥미롭다.
일단 게임적으로는, ‘죽을 때마다 패널티를 부여하는’ 데에 개연성을 붙여준다. 플레이어는 죽을 때마다 극장으로 소환당해 ‘마크 이모텔’이라는 극장 주인에게 꾸중(;)을 듣게 되는데, “연기를 좀 잘 해 보란 말이야! 못 했으니까 패널티 먹어라!” 는 컨셉으로 플레이어의 서바이벌 수치(체력/피로도/허기)를 영구적으로 감소시킨다... 재밌는 부분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최대치가 감소하는 것보다는 이런 뒷설정이 있는 편이 게임을 훨씬 풍부하게 만든다.
거기다가 빼놓을 수 없는 7번, 8번 데스 패널티가 또 이 게임의 백미다.
게임 첫 시작부터 등장하는 ‘동반자’라는 의문의 남자가 7번, 8번째 죽음에서 마크 이모텔 대신 등장한다. 동반자는 게임 속에서도 밤마다 죽은 물건 상점을 열어 거래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그와 비슷하게 죽음 후에도 거래를 제안한다. 그는 ‘모든 데스 패널티를 없애주는 대신 당신이 가진 아주 크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져가겠다’고 말한다.
이 대사를 자세히 보자. ‘당신이 가진 무언가를 빼앗는다는 뜻이야. 진짜 당신 말이야.’
‘당신’이 이탤릭체로 쓰여 있다! 이 ‘당신’은 창점술사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플레이어인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만일 이 거래에 응한다면 어떤 엔딩을 보려 하더라도 곧장 ‘거래 엔딩Deal Ending’으로 직행하게 되며, 플레이어는 예정된 낮(현대인)과 밤(혈족) 두 개의 엔딩 중 어떤 것도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그가 가져간 것은 엔딩이다. 모든 게이머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정말 재밌는 컨셉이다. 게임 자체의 스토리텔링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메타적으로 이런 요소를 넣어주다니...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엔딩도 아주 흥미로웠다.
<패솔로직 2>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끝난다. “공연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당신은 자유입니다.”
메타적인 밑밥을 깔아두었기 때문에 넣을 수 있는 멘트다. 그리고 이 게임이 얼마나 피곤한지, 얼마나 플레이어를 정신적으로 쪼아대는지를 생각하면, 이만큼 좋은 엔딩 문구가 또 없다. ‘플레이어인 나’는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창점술사’가 아니다. 이 문구를 통해 나는 ‘창점술사’를 내려놓고 다시 현실의 ‘내’가 될 수 있다. 부정적이고 암울한 러시아 특유의 분위기에 30시간이나 시달려야 했던 <패솔로직 2>의 세계를 고작 이 두 마디 말로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정말... 멋지다... 멋지다는 말밖에는 할 수 있는 소리가 없다.
3. 맺음
<패솔로직 2>는 의사가 되어 사람들을 구하는 이야기이다. 맞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시간적, 공간적, 아이템적 제한으로 인해 모두를 구할 수가 없다. 게임을 진행하는 내내 계속해서 '누구를 살리는 것이 이득일지 판단'하고,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죽게 내버려둘지 선택'하게 만들어 플레이어에게 피로감을 준다. 그리고 그 피로감 덕분에 수작을 넘어 명작에도 발을 들이밀 수 있을 정도의 게임성을 얻는다.
굉장히 독특하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원작인 <패솔로직 1>에서는 등장인물 셋-창점술사, 학사, 사칭자-으로 플레이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본편은 창점술사 파트만 존재하며 학사 시점은 DLC로 나와 있다. (아직 플레이하진 않았고 할 예정이다.) 개발자는 사칭자까지 전부 작업할 의향이 있는 듯하니 앞으로도 더 기대가 된다.
더 많은 사람이 알아주는 게임이 됐으면 싶지만, 동시에 게임의 높은 피로도로 인해 그렇게까지 메이저해질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맨 위에서도 썼듯이, 생존과 약한 공포 요소를 견딜 수 있는 게이머라면 꼭 한번 플레이해보기를 권한다. 고작 이런 리뷰나, 스토리를 전부 풀어 쓴 글을 읽는다고 해서 이 게임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확언할 수 있다. (애초에 플레이타임이 기본 30시간인 게임을 어떻게 고작 글 몇천 자로 전부 설명할 수 있을까?)
직접 플레이하는 것이 이만큼 유의미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나 이런 스토리가 중요한 게임으로선 더더욱.
Tip 1... 생존 난이도가 너무 높다면 게임 설정에서 낮출 수 있다. 마크 이모텔에게 비웃음을 당하기는 하겠지만...
Tip 2...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 뭔 소릴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면 정상이다. 오류도 버그도 아니고 한글화가 엉망인 것도 아니다. 이 게임의 한글 패치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되어 있다. 그냥 플레이하면 된다... (한글 패치 제작자분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결론. 강력추천. 나는 이제 2회차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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