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피쉬(BANANA FISH)> 리뷰
by Golden Goose※ 본 작품과 리뷰는 마약, 강간, 성/인신매매, 살해, 조직범죄 등 자극적이고 끔찍할 수 있는 소재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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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세출(不世出)의 천재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라서 감히 범인으로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이들의 영웅담을 정말 좋아하고, 그런 천재 캐릭터를 몹시도 사랑하는 편이다. 최근에 본 작품들 중에는 <마도조사>의 위무선이 그랬고, <약속의 네버랜드>의 노먼이 그랬으며, 이런 취향을 쭉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아마도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에 도달할 터다. 안타깝게도 천재 속성이 있는 캐릭터들의 운명은 대체로 기구한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또 한 명의 비운의 천재가 있다. <바나나 피시>의 애시 링크스(Ash Lynx)다.
(편한 리뷰 시작하기 전에 구매인증부터...)
<바나나 피쉬>는 1985년에 연재를 시작해 1994년에 완결이 맺어졌다. 햇수로 따지면 세상에 나온 지 35년, 완결이 난 지는 26년이 된 셈이다. 그런 작품이 2018년에 애니화가 되고 흥행에도 성공했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시간을 뛰어넘고 세대를 아우르는, 그야말로 명작 중의 명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작을 2014년에 처음 읽어서 비교적 늦게 접한 편인데, 외전이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최근에 다시 읽게 됐고... 읽는 내내 결말을 알고 있어서 온몸을 비틀면서 괴로워했고... 이게 사는건가 싶고... 아무튼 온갖 감정의 홍수에 휘말려서 외전 '빛의 정원'을 다 보고 나서는 완전히 오밤중 ○○동 오열녀 상태였다. 진짜로 훌쩍훌쩍 우는 수준이 아니고 흐느끼고 있었던... (대충 9권에서 울다가 좀 멎었다가 11권부터 다시 울기 시작해서 외전 내내 울었다고 봐도 무방할듯...)
그리고 그게 지금 내가 티스토리 블로그까지 새로 파와서 리뷰글을 쓰고 있는 이유이다......... 평생을 살면서 이렇게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작품을 몇이나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고 본다. 그런 작품을 만나는 경이로운 순간을 흘러가는 시간에 떠내려 보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이 순간의 아픔과 공감과 경외와 존경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오쿠무라 에이지가 애쉬에게 가진 감정과 일부 동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아래서부터는 작품 전체 & 결말부 및 외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말이 상당히 임팩트 있는 작품이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먼저 보시고 와주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 이북 및 종이책 구매는 알라딘, YES24, 교보문고, 리디북스 등에서 <바나나 피시>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 2018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 라프텔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https://www.laftel.net/item/39048/BANANA-FISH |
1. 애쉬 링크스 (Ash Lynx) 의 과거
바나나 피쉬의 주인공인 애쉬 링크스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다. 아름다운 용모, 비상한 두뇌, 탁월한 신체능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춘, 어찌 보면 완벽한 인간이었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그는 고작 8살의 나이에 동네 야구단의 코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정상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던 가정을 꾸렸던 그의 아버지는 그를 달래고 안고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반항하지 말고 대신 화대를 받으라'고 조언한다. 애쉬의 인생은 그렇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성적 학대에 견디다 못한 애쉬는 결국 아버지의 총을 훔쳐 자신을 성폭행하던 남자를 살해한다. 그것이 그의 첫 살인이었다. (그 남자는 경찰조사에 의해 아동성폭행 및 연쇄살해 정황이 발견되었고, 명백한 살해범인 애쉬도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거기서 평온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렸기 때문에 힘이 없었던 애쉬는 그의 예쁜 얼굴을 눈여겨 본 코르시카 인 마피아 조직의 수장, 디노 고르치네에게 팔리듯 끌려가 아동 성매매를 당하게 된다. 그때의 일들은 아동 포르노로 찍혀 음지에서 팔려나갔고, 그런 끔찍한 일들을 겪으면서 애쉬는 점점 더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자신을 꽁꽁 감춰 버리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용모뿐만 아니라 온갖 분야에 천재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눈치챈 디노 고르치네에 의해 일종의 후계자로서 제왕학을 배우게 된다.
<바나나 피쉬>는 어린 나이에 이미 온갖 일들을 겪은 애쉬가 가슴 속에 불길을 간직한 채 점점 더 단단해져 온 17세의 어느 날에 시작된다. 제법 성장한 그는 이제 예전만큼 남들에게 무력하게 당하는 어린애가 아니다. 뉴욕의 심장인 맨해튼에서 거리의 청소년 불량배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고, (작중에서 표현하길) SWAT 급이라는 백발백중의 사격술을 자랑하며 웬만한 녀석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디노 고르치네의 손아귀에 있었다. 뉴욕을 넘어 미국 전반부를 장악할 만큼 거대한 마피아 조직 수장의 손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고, 애쉬 자신도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분노를 감추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그런 그의 앞에 어떤 남자가 나타난다. 총을 맞고 죽어가는 남자는 그에게 총탄 모양의 로켓 목걸이를 건네며 '바나나 피시를 만나라'고 말한 뒤 숨을 거둔다. 낯선 이에게서 '바나나 피쉬'라는 단어를 들은 애쉬는 깜짝 놀란다. 베트남전 파병 후 정신이 이상해진 그의 형 그리핀이 매일 되뇌는 단어였기 때문. 로켓 목걸이 안에서 정체불명의 약물을 발견한 그는 아직 사람인지 조직인지 물건인지도 모르는 '바나나 피쉬'를 추적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그는 다시금 운명의 거친 소용돌이 속으로 발을 옮겨놓는다.
2. 오쿠무라 에이지의 등장, 애쉬와의 만남
그런 애쉬의 앞에 나타난 것이 오쿠무라 에이지다. 일본인으로, 19세의 대학생인 그는 훌륭한 자질을 지닌 장대높이뛰기 선수였으나 부상으로 인해 슬럼프를 겪고 선수 생활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런 그를 안타까워 한 사진작가 이베 슌이치는 그의 기분을 환기시켜주기 위해 취재차 방문하기로 한 뉴욕에 함께 가기를 권유한다. 선수 시절 자신의 사진을 찍어 준 이베의 위로를 받아들여 에이지는 그의 조수라는 명목으로 뉴욕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애쉬를 만나게 된다.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운명이었다. 작품을 다 읽고 나서 생각해봐도 그렇지만, 처음 읽더라도 이 감상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둘의 만남을 작가가 묘사하는 방식이 정말로 '운명'의 그것이므로. 단순히 일반적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통해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첫 만남부터 애쉬는 에이지에게 호감을 표현한다. 제법 가까운 이들조차도 자신의 바운더리 안으로 들여놓는 법이 없던 그가 '네 총을 한 번 만져봐도 되겠느냐'는 에이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총'은 애쉬가 자신의 몸을 지키는 최고의 방어수단이자 최강의 공격수단이다. 심지어는 커스텀 튜닝을 통해 신체의 일부나 다름없어진 그것을 애쉬는 방금 처음 만난 일본인 청년의 손에 스스럼 없이 건네준 것이다. 별것 아닌 장면으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이 의미하는 바는 몹시 크다. 애쉬는 그 순간 에이지의 손에 제 목숨을 쥐여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를 절망적인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끈질기게 놓지 않았던 그 생명을 남의 손에 맡긴 것이다.
<바나나 피쉬>를 다시 읽으면서 극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을 본 나는 결국 또 깨닫고 말았다... 애쉬가 어쩌다, 무슨 계기로 에이지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그가 겁도 없이 하늘을 날아 높은 담장을 뛰어넘은 순간? 아니면 숱한 역경을 겪고도 대가 없이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상냥함? 나는 그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쉬는 에이지를 처음 만난 순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다. 눈앞의 이 사람이 자신의 영혼의 반쪽이라는 것을. 그러지 않고서야 그토록 방어적이고 경계가 심한 애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건 그야말로 운명적인 이끌림이었을 터다. 상처입은 짐승이 제 상처를 어루만져줄 이를 알아채는 것. 단순히 눈이 커지고 동공이 확장되고 손이 멈추는, 그런 묘사만이 운명을 그려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애쉬가 행한 이 사소할지도 모르는 행동에서 운명을 읽어낼 수밖에 없다. '어째서?', 그런 질문은 운명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스스로도 대답할 수 없을 테니까.
오히려 첫 만남에서 그것을 깨닫지 못한 쪽은 에이지다. 아마도 에이지는 처음부터 애쉬를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작품이 전반적으로 원탑 주인공인 애쉬 위주로 서술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을 가능성도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에이지는 처음부터 애쉬를 지켜줘야겠다거나 소중히 여기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는, 에이지가 애초부터 '상냥한 사람'으로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에이지는 천성적으로 다정한 사람이고, '타인의 SOS 신호를 기민하게 알아차리는' 사람이다. 그가 애정을 쏟아 보살피는 상대는 애쉬를 만나기 전에도 숱하게 있어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길 것이다. (실제로 그 둘 모두가 외전 <빛의 정원>에서 등장한다.)
에이지가 타인에게 보내는 애정은 그에게 있어 흔한 것이다. 이런 이들의 사랑은 그래서 더욱 간과하기가 쉽다. 많은 것을 사랑하는 이가 그 중에서도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그것은 묘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읽는 이가 눈치채기도 어렵다. 그리고 실제로도 아마, 애쉬는 에이지에게 그간 종종 있어왔던, 제가 사랑을 나누어 줄 흔한 이들 중 하나로 다가왔을 것이다. 애쉬가 첫눈에 에이지를 알아보았다면, 반대로 천천히 젖어들어간 것은 에이지다. 애쉬라는 인간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본 뒤에야 그는 에이지에게도 특별한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실제로 애쉬를 따라가서 여러 고난을 겪고도 한동안 애쉬에 대한 에이지의 감정 묘사는 담백하기 짝이 없다. 애쉬가 무사한지, 힘들지는 않은지 걱정하기는 하지만 상냥한 에이지에게 있어 누구라도 그렇지 않겠는가. 사랑이란 곧 특별함이다. 에이지가 애쉬만을 향해 가지는 특별한 감정은 작중에서도 제법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싹트기 시작하며, 아이러니하게도 애쉬가 떠난 뒤 그것은 더욱 더 자리를 공고히 하고 깊이 뿌리를 내린다. 애쉬를 향한 에이지의 사랑이란 그런 것일 터다.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더 크게 몸집을 키워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는 고목과 같은.
3. 바나나 피쉬, 그리고 다른 이들의 등장
'바나나 피쉬'는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만큼 작중에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것은 마약의 이름이다. 정확히는 신종 환각제로, 투약한 이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불어넣은 뒤 일종의 최면 암시를 통해 대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는 위험한 약물이다. 세 명의 과학자들이 우연한 경위로 발견했고, 이것은 디노 고르치네의 손에 넘어가 마피아 조직간의 알력 다툼은 물론 소련과 냉전중인 미합중국이 공산주의를 견제하는 데까지 사용되기에 이른다. 애쉬는 '바나나 피쉬'의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있으나마나 한 부모 대신 그를 키워준 형 그리핀이 이 약물에 당해 폐인이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다툼에 휘말려 죽기까지 했으니. 그리고 '바나나 피쉬'를 둘러싼 사람들은 곧 애쉬와도 이런저런 관계를 맺게 된다.
이 작품에는 상당히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른바 군상극이라 부르는 것이 어울릴 정도인데, 대충 어림잡아도 주요한 등장인물이 20명을 넘어간다. 이들 중 하나만 빠져도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테지만, 이런 군상극은 정말로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특성을 살리며 비중을 분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요, 워낙 많은 이들이 등장하다 보니 작품의 서사를 위해 캐릭터들이 도구로 쓰인다는 느낌을 지워내기도 어렵다.
하지만 <바나나 피쉬>는 이것을 해낸다. 작품의 원탑 주인공은 명확하게도 애쉬 링크스이고, 그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오쿠무라 에이지가 서사상 중요도 측면으로는 뒤를 잇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애쉬를 가두고 길들이려는 디노 고르치네, 애쉬를 질투한 오서, 애쉬의 친구였던 쇼터, 애쉬를 가르친 블랑카, 애쉬의 숙적인 유시스(웨룽), 애쉬를 동경한 신... 그 밖에도 수많은 이름들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아있게 된다. 말로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작품을 읽고 나면 주인공의 이름 외에는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주인공의 이름조차 까먹어 버리기도 하는데, 작품을 읽고 나서 남아있는 이름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작가가 캐릭터를 사용하는 방식과 서사를 이끌어가는 방법에 몹시도 통달했다는 방증이다.
3-1. 바나나 피쉬
그런 면에서 환각제로서의 '바나나 피쉬'가 작품 내에서 그려지는 방식이 아주 재미있다. 작품이 후반부로 향할 수록 '바나나 피쉬'는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 계속해서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최후에는 폭발의 불길 속에 허무하게 버려질 정도로 의미 없는 물건이 되어 버린다. 그 마지막은 거의 맥거핀에 가까웠다고 느껴질 정도인데 아마도 착각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모든 사건들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바나나 피쉬'가 아닌 '애쉬 링크스'이기 때문이다. '바나나 피쉬'는 그저 애쉬가 활동을 시작하도록 돕는 트리거로서의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심지어 애쉬에게는 그것이 별달리 중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애쉬에게 의미가 없는 물건'이기 때문에 '바나나 피쉬'는 끝내 의미 없이 버려진다. 그리고 그런 점이 바로 애쉬의 성품을 역으로 짐작할 수 있게 해주니, 어찌 보면 맡은 바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고 볼 수 있겠다.
애쉬와 다른 이들의 관계성도 마찬가지다. '바나나 피쉬'로 인해 촉발된 관계든 아니든, 결국 그들은 애쉬라는 인간의 빛과 그림자에 홀리듯 이끌려 관계를 맺어나가게 된다.
3-2. 디노 고르치네
디노 고르치네는 상당히 일관적인 인물이다. 그가 애쉬에게 갖는 감정은 애증, 그리고 꺾지 못할 것에 대한 도전정신에 가깝다. 애쉬 평생의 가장 강한 구속구였던 디노는 아이러니하게도 애쉬의 천재성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기도 하다. 호모 취향이었기에 부인을 두지 않아 후계가 없었던 디노는 어릴 적 단순히 성매매용 '상품'으로 데려왔던 애쉬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제 후계로 삼기 위해 제왕학을 가르친다. 외전 <Private Opinion>에서 그려진 바에 따르면 애쉬는 스탠포드-비네 방식의 지능지수 판정(이른바 'IQ 테스트')으로 180을 받았다. 수치가 너무 높아 재검사를 했더니 180 이상이란다. 그뿐인가, 애쉬는 지능지수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조건마저 상당히 좋았다. 밝은 금발과 희귀한 녹색 눈의 아름다운 외모는 물론이요 남들보다 빠른 반사신경 등. 디노는 그런 애쉬를 '신의 그릇'이라 여기고 연마하고 싶어한다. 천재를 발견한 이가, 그가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지 지켜보고, 키워내며 느끼는 황홀경. 디노는 아마도 그것에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애쉬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오죽하면 살쾡이(Lynx)라는 별칭이 붙었겠는가. 그는 길들여질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늑대를 개처럼 집안에서 기를 수는 없듯이, 살쾡이도 집고양이로 기를 수는 없는 법이다. 디노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을 염원했고, 때문에 애쉬를 결코 죽이지 못했다. 제 손에 그의 생사여탈권을 넣고 싶어할지언정 타인의 손에 죽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다소 얀데레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애쉬의 목숨을 구해주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참으로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작중에서 애쉬가 겪는 그 모든 수난은 대부분 이 자로부터 기인했음에도... (물론 애쉬는 디노의 죽음이 전혀 유감스럽지 않았겠지만.)
3-3. 쇼터 웡
차이니즈 마피아 소속의 쇼터 웡은 애쉬와 소년원에서 처음 만났다. 오서의 뒷공작으로 살인 누명을 쓴 어린 애쉬가 분노로 인간성을 잃어버리려는 찰나 붙잡아 준 것이 바로 쇼터였으며, 그 이후로 둘은 제법 가깝고 친한 사이로 지내게 된다. 쇼터는 에이지가 나타나기 전까지 애쉬에게 있어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친구였을 것이다.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 하지만 애쉬는 에이지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쇼터가 인간성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주기 위해 그를 자신의 손으로 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애쉬가 심적으로 피폐해지기 시작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쇼터를 제 손으로 쏴버린 애시가 그간 지켜왔던 '가능한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겨가며 흑화(?)하는 것을 보면 역으로 쇼터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애쉬와 쇼터는 서로가 인간성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하지만 그 방식이 초래한 상반된 결과는 결국 애쉬에게, 에이지에게, 더 나아가서는 신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그의 죽음으로 인해 애쉬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으니...
3-4. 유시스(웨룽)
웨룽은 뉴욕에 위치한 또 다른 마피아 조직인 차이니즈 마피아의 수장이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수장은 아니다.) 그는 애쉬와 참으로 비슷하면서도 다른 인물인데,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운 용모나 어릴 적 모든 것을 잃고 분노로 생을 연명해왔다는 점은 비슷하지만, 그와 애쉬의 차이는 매우 결정적이다. 그것은 완결이 가까운 시점에서 블랑카의 입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당신은 남을 미워할 줄만 알지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군요. 애시는 증오하며 패왕이 되느니 사랑하며 멸망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애시는... 녀석은 적어도 사랑할 줄을 압니다."
그야말로 애쉬와 웨룽의 본질을 꿰뚫는 대사다. 비슷한 일들을 겪었음에도 둘의 행보가 빛과 그림자처럼 반대를 이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애쉬는 자신을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기 이전부터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스킵이나 쇼터를 소중히 여기던 그의 태도, 맥스와 이베가 위험에 처하자 투덜거리면서도 구하러 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등. 애쉬는 태생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나눠줄 다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그가 비로소 그 사랑을 받아주고, 같은 사랑을 되돌려 줄 수 있는 상대인 에이지를 만나 행복을 찾게 된 것이다.
웨룽은 그런 그를 질투한다. 에이지를 만나 구원과 안식, 행복을 얻은 애쉬를 질투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웨룽은 애쉬를 저와 같은 나락으로 끌어내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애쉬가 아닌 에이지를 노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상당히 입체적으로 조형된 캐릭터라고 느껴지는데, 단순히 애쉬의 군계일학과 같은 출중함을 질투한 중간보스(?) 오서와 비교되며 그 격이 한층 더 심오하게 느껴진다. 악역이라고 해서 마냥 미워하기엔 어려운 캐릭터라는 뜻이다. 단순히 사연 있는 악역과는 결이 다른 서사와 감정선을 그려내는 작가의 능력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결과적으로는 웨룽도 애쉬만큼은 아니지만 신을 만나 나름의 작은 행복을 찾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후일담에 따르면 그도 젊은 나이에 습격당해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이런 점마저 애쉬와 닮은 꼴이다.)
3-5. 블랑카
암흑가에서 이름높은 킬러인 블랑카(코드네임)는 위의 세 인물들과는 달리 애쉬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애쉬에게 싸우는 법을 알려준 스승이라는 점, 그리고 그 무렵의 애쉬가 거의 유일하게 공포감을 느끼지 않았을 성인 남성이라는 점에서는 영향을 끼친 인물이기는 하겠으나, 작중에서는 꽤나 후반부에서야 직접 등장하는 그는 상당히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다. 여기서 나는 또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애쉬의 과거를 아는 인물이 현재에 나타나서 제3자의 시선으로 그를 그리고 묘사한다. 우리는 독자의 시선으로 애쉬의 삶을 따라가며 그의 언행을 직접 보지만, 블랑카는 타인이 본 애쉬가 어떤 인물인지를 간접적으로 설명해주는 서술자다. 글로 따지면 1인칭 시점이던 것을 3인칭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 이렇게 서술 방식에 차이를 둠으로써 작가는 애쉬라는 인물의 입체감에 깊이를 더한다. 블랑카가 꺼내놓는 작중 인물들의 본질을 꿰뚫는 말들은 아주 필요한 곳에만 사용된다. 말하자면 작가가 블랑카의 입을 빌려 인물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위화감 없이 블랑카라는 캐릭터 자체도 작품 안에 잘 녹아있는 것이 참 놀랍고 대단하다.
그 외에도, 블랑카는 애쉬가 거의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상대이기도 하다. 어떤 고난과 맞닥뜨려도 돌파할 방법을 강구하던 애쉬는 블랑카의 등장으로 승산이 없다는 판단까지 내리고 자발적으로 디노의 수하로 돌아가게 된다. 여러모로 그는 애쉬의 스승과도 같은 포지션에 있는 존재다. 애쉬에게 '에이지를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네 외로움을 달래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 아니냐'는 비수와 같은 말을 꽂으면서도 완결부에 가까워서는 결국 그를 아끼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돕는다. 마지막에는 자신과 함께 카리브로 가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할 정도로. 코드네임의 유래가 자신이 평생 가장 사랑한 여자의 별명이라는 것마저 로맨틱한 킬러 캐릭터인데, 이래저래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된다.
4. 애쉬와 에이지
이처럼 애쉬의 짧고 강렬한 삶에 엮인 인물은 수없이 많았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을 포함해 그에게는 수많은 적과 친구가 있었다. 적이 많은 인물이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아는 이답게 친구도 많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애쉬에게도 에이지는 특별하다. 특별할 수밖에 없다. 그를 키워준 그리핀도, 유일한 친구였던 쇼터도, 동생처럼 아꼈던 스킵도, 스승이었던 블랑카도, 그 누구도 애쉬에게 에이지와 같은 존재는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읽는 나는 더더욱 애쉬와 에이지가 영혼을 나눠 가진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지가 애쉬에게 준 사랑이 쇼터가 준 것과, 그리핀이 준 것과, 혹은 블랑카가 준 것과 무엇이 달랐을까? 단순히 생각해서는 차이를 찾기 어렵다. 그리핀은 혈육이니까, 블랑카는 스승이니까 예외라고 치더라도, 어째서 쇼터가 애쉬에게 있어 에이지와 같은 위치에 설 수 없었느냐는 의문이다.
사실 무의미한 질문이다. 사랑이란,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까. 애쉬와 에이지는 서로의 운명이었다. 그 한 문장으로 둘의 관계는 정의되고 모든 의문은 해소된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고 똑같은 조건의 다른 이를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있다면 세상 그 누가 사랑으로 슬퍼하고 눈물 흘릴까. 마찬가지다. 비슷한 조건의 그 누구도 그들에게 서로같을 수는 없었다. 오직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관계. 우정보다 진하고 사랑보다도 짙은, 영혼의 깊은 곳이 연결된 관계였던 것이다. 둘의 관계가 동성애였느냐, 혹은 섹슈얼한 호감이 포함된 관계였느냐, 그런 의문조차도 필요가 없다. 애초에 애쉬와 에이지의 관계는 사랑이라는 조악한 이름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둘 사이의 감정을 서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간접적인 경험으로 느끼는 것만 가능할 뿐.
이 둘을 보면서 나는 뮤지컬/영화 헤드윅의 OST인 'Origin of Love(사랑의 기원)'라는 곡을 수없이 떠올렸다. 정확히는 노래의 모티브가 된 플라톤의 <향연> 속 철학을 떠올렸다. 먼 옛날, 인간은 두 사람이 등을 맞댄 것처럼 붙어있는 (두 쌍의 팔, 두 쌍의 다리, 두 개의 얼굴을 가진) 힘있는 존재였으나 사랑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인간의 힘이 강력해지자 신들은 두려워했고 분노했으며, 제우스는 번개로 인간의 몸을 절반으로 나누어 버렸다. '또 다시 허튼 생각을 한다면 너희를 한번 더 절반으로 찢어 놓으리라. 그리 된다면 한 발로 뛰고 한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할지니.' 그렇게 인간은 평생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원래는 한 몸이었을 것을 되찾기 위해. 자신과 같은 아픔, 심장을 반으로 갈라놓는 고통을 아는 상대를 찾기 위해.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나는 애쉬와 에이지가 꼭 그런 관계라고 생각했다. 잃어버린 반쪽, 원래는 한 몸이었을 상대. 정말 무어라 더 표현할 수 있을까... 눈물만...
부연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어서 더 끄적이자면... 애쉬가 에이지에게 가지는 감정들은 몹시도 명확하다.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애쉬의 입을 통해서도 수없이 많이 서술되고 있다.
"녀석이 무사하지 않으면 난 안 돼."
'가만두지 않을 거야. 널 해치는 녀석은. 절대로 용서 안 해. 그게 누구라 해도. 아무도 널 해치지 못하게 할 거야.'
"난 지금이 행복해. 태어나서 이렇게 행복한 적은 처음이야. 이 세상에 적어도 단 한 사람만큼은... 아무런 대가 없이 날 위해주는 사람이 있어. 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행복해서 미칠 지경이야."
애쉬는 에이지를 사랑한다. 더없이 소중히 여긴다. 에이지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지금껏 지켜온 제 신념을 꺾을 수도 있고, 친했던 이를 죽일 수도 있으며, 그토록 질기게 연명해 온 목숨조차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끊어버릴 수 있다. 애쉬는 에이지를 사랑하고, 심지어 그 이유마저 스스로 알고 있고 설명할 수도 있다. (물론 이유를 설명할 수 없더라도 애쉬는 에이지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에이지가 애쉬에게 가지는 감정은 그렇게까지 명료하지가 않다. 사랑하지 않는다거나, 소중히 하지 않는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다. 에이지에게 애쉬가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근본이 상대적으로 명확하지 않다는 뜻이다. 물론 그저 운명을 느꼈다고, 애쉬와 같은 경우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나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사실, 오쿠무라 에이지라는 인물은 얼핏 봐서는 쉬이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에이지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에 서술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그의 성격이나 행동 양식을 이해할 수 없다기보다는, '왜 에이지가 하필이면 애쉬 링크스를 그토록 사랑했는가'를 대답해보라면 설명하기가 어려운... 그런 것. 물론 애쉬는 수많은 사람들(디노 블랑카 유시스 신 폭스... 기타등등...)을 '홀리는' 사람이었고, 독자들 또한 그들이 애쉬에게 갖는 열망을 어렵잖게 이해할 수 있지만, 에이지가 애쉬에게 가지는 그것은 '열망'이라는 저급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순수하고 고등한 감정이다. 그저, 동정 혹은 사랑. 중후반부까지도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던 에이지의 감정의 근원이 언어가 되어 어렴풋하게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작품의 끝을 몇 페이지 남겨놓지 않은, 끝의 끝 부분이다. 애쉬를 만나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에이지는 이베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는... 조용히 앉아 있었어요. 폭력이나 싸움과는 전혀 무관한 듯이. 아주 고요하게... 하지만 고독해 보였어요. 정말이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한 고독이 느껴졌어요. 그때 결심했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믿겠다고. 어떤 일이 생긴다 해도 난, 나만은..."
그리고 그제서야 우리는 깨닫고 만다. 아, 세상에는 타인의 상처를 보듬을 수밖에 없도록 태어난 인간이 있구나, 하고.
동정과는 결이 다르다. 그렇게 하찮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야말로 숭고한 인류애이고 또한 사랑이다. 상처입은 짐승을 껴안아주고 싶은 욕구가 몹시도 순수하고 고결한 형태로 발현된 것이 에이지가 애쉬에게 가지는 감정이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애쉬의 감정에는 많은 이들이 쉬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이지의 감정에 공감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애쉬에 비해 에이지는 아주 평범해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살펴보면 에이지는 애쉬보다도 더욱 소수의 부류에 속하는 인간이다. 아무런 대가 없이, 바라는 것 하나 없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로 흔치 않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다시 한 번 내가 범인이라는 걸 깨닫고 만다. 이렇게 숭고한 사랑과 인류애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또 생각한다. 그러한 사랑에 이유를 붙여 이해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라고. 애쉬를 향한 에이지의 감정은 그야말로 초월적인 영혼의 공명, 정신의 울림, 그저 그것이라고. 그것은 어쩌면 내가 평생 온전히 납득할 수 없는, 간접적인 경험으로조차 편린밖에 엿볼 수 없을 그런 감정일 것이라고 말이다.
에이지의 감정에 대한 서술이 작품의 극후반부, 애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에서야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는 연출은 가히 고통스러웠다. 에이지의 안전을 위해서 뭐든지 할 수 있었던, 그와 헤어져 자신을 다시 고독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일마저도 할 수 있었던 애쉬조차 그의 편지를 읽다가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으니. '난, 그런 널 보며... 지켜줘야 한다고 늘 생각했어.' 그 누가 애쉬에게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었을까. 홀로 오롯하고 아름답고 강한 맹수를 향해, 감히 그 누가.
'난 운명으로부터 널 지켜주고 싶었어. 널 끌어가고 휩쓸어가는 운명의 소용돌이로부터... 넌 표범이 아냐.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그래, 애시. 운명은 바꿀 수 있는 거야. 넌 외롭지 않아. 내가 곁에 있어. 내 영혼은 언제나 너와 함께 있어.'
My soul is always with you. 에이지의 사랑은 언어와 문자라는 형태를 갖추고 비로소 애쉬를 안식으로 이끈다.
사실 애쉬는 스스로 삶을 포기한 것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급소를 피해 찔린 칼, 충분히 치료를 받아 삶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도 그는 에이지의 마음을 껴안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순간에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듯하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에 지쳐, 더 이상의 불행을 겪기 전에 눈을 감고 싶었을 수도 있다. 혹은 이미 숱한 범죄를 저지른 자신이 응당 받아야 할 업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혹은 에이지의 안전을 위해 제가 살아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혹은, 그저 인생에서 이 이상의 행복을 가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눈을 감기를 택했을지도 모른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듯이. 무엇이든 정답은 없을 터다. 그저 그 모든 감정을 안고 눈을 감은 애쉬의 얼굴이, 도서관의 사서조차 깨울 수 없을 만치 행복해 보였다는 것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고 기쁘면서도 그만큼 아플 뿐이다.
애쉬 사후 7년이 지난 어느 때를 그린 외전 <빛의 정원>을 통해 우리는 애쉬와 에이지의 관계를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다. 7년 후의 에이지는 비교적 담담해 보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그에게도 통한 것인가 싶지만, 이어지는 묘사들로 사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애쉬가 죽음을 맞이한 장소가 도서관이었던 것에 트라우마가 남은 에이지는 7년간 도서관 비슷한 건물엔 가까이 가지도 못한다. 그와 함께 지냈던 짧은 시간 동안 찍었던 사진들이 담긴 필름조차도 꺼내보지 못한다. 애쉬의 본명인 애슬란, 즉 여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키라라는 아이를 보며 '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단다'라고 추억한다. 애쉬의 고향인 케이프코드에서 그와 닮은 금발의 남자를 보고 몸이 먼저 달려가 붙잡기도 한다. 에이지는 애쉬를 조금도 잊지 못했다. 그리고, 잊을 생각도 없다. 그런 에이지를 보며 신은 생각한다. '만족하지? 에이지를 영원히 차지했으니까.'
신과 깊은 대화를 나눈 뒤 에이지는 말한다. '난 그를 잊지 않아. 잊으려 하지도 않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불행한 건 아냐. 그는 열심히 살았어. 그건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잖아? 그의 기적과도 같은 인생과 짧은 순간이나마 함께 지낼 수 있었다는 것에 난 감사해.' 그리고 에이지는 자신의 전시회에 애쉬의 사진을 건다. 여명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다른 작품이었다면 이것은 일종의 해방, 그리고 놓아줌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바나나 피쉬>에서는 아니다. 에이지는 제 영혼의 반쪽인 애쉬와 평생 함께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영혼을 반으로 나눠 가졌으니. 하지만 그 영혼의 반쪽이 제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해서 불행할 이유도 없다. 그는 여전히, 앞으로도, 언제까지나 애쉬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에. 타인에게 애정을 주고 사랑을 주도록, 그런 성정을 타고난 에이지에게는 그것이 가감없는 진실이다. 에이지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애쉬를 사랑하니까.
5. 작품에 대해서
<바나나 피쉬>는 순정만화의 탈을 쓰고는 있지만 내용 전개로는 사실상 소년~성인만화에 가깝다. 소재의 자극성은 물론이요, 인물들간의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장면은 전투씬이라는 것을 봐도 그렇다. 바로 그 부분에서 <바나나 피쉬>는 몹시도 독특하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지극히 남성적이고 마초적인 이야기 플롯 위에 얹어진 섬세하고 아름다운 감정선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거기에 매력을 더하는 것이 '애쉬 링크스'라는 캐릭터다. 작품을 읽기 전, 작품 소개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다. '17세의 나이에 IQ 200의 두뇌와 특수부대 급 전투력을 지닌 미모의 소년 애시'. 하지만 처음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17세인 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런데. 머리가 제법 좋다는 것도 알겠는데, 이걸 과연 IQ 200이라고 할 정도인가? 사격술이 뛰어나다는 것도 알겠는데, 그게 특수부대 급 전투력이라고 할 정도인가? (심지어는 초반부 그림체가 미형이 아닌 탓에 애쉬가 미인이라는 서술에조차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작품의 묘미다. 애쉬의 천재성은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는다. 작품이 전개되면서 차차 밝혀지는 구조인 것이다. 처음에는 빗맞히는 법이 없는 완벽한 사격술로, 그 다음에는 컴퓨터를 해킹하는 실력으로, 그 다음에는 지능검사의 결과로, 그 다음에는 '바나나 피쉬'의 성분을 분석하고 유추하는 전문지식으로, 그 다음에는 미합중국을 들었다 놨다 하는 고위 인사들을 몰아붙이는 거침없는 대담으로... 그의 천재성은 작품이 끝난 뒤의 외전에서까지도 계속해서 양파 껍질 벗기듯이 밝혀진다. 무려 마피아 보스가 가르치길 명한 제왕학의 교사들과 격론을 나누는 조숙한 지성. 고작 17, 18세의 나이로 작성한 수많은 논문들. 애쉬는 그야말로 불세출의 천재였다.
사실 애쉬가 갖춘 그 모든 조건들과 천재성은 악역으로서는 의외로 흔한 설정일 수도 있다. 비상한 머리, 아름다운 용모, 능숙한 체술. 실제로 디노와 웨룽 등 많은 이들이 애쉬가 '악역'이 되기를 열망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야망을 갖기를 바랐고, 돈과 권력을 추구하며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애쉬는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는 것에 가깝다. 애쉬는 악역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상냥하고 선한 인물이었다. 그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악역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조건이 없었던 셈이다. (실제로 블랑카도 그에게 '넌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어. 부와 권력, 온 세상이 머지않아 네 발밑에 엎드릴 거야. 단 하나만 포기한다면...' 이라 말한다. 여기서 그가 포기해야 할 단 하나는 그의 선한 성품, 인간성이다.)
애쉬 링크스는 그런 인물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의 삶의 발자취는 경이롭고 기적이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바나나 피쉬>를 전부 읽은 이라면 대부분 외전의 에이지와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의 기적과도 같은 생을 짧게나마 엿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사실상 내가 이렇게 긴 리뷰를 쓰고 있는 이유도 애쉬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이제는 얼굴만 봐도 척추반사처럼 눈물샘이 자극되는 지경에 이르러서 그만...)
애쉬 링크스라는 완벽에 가까운 캐릭터 조형을 떠나서도 <바나나 피쉬>는 참으로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늘어지는 구간이라곤 하나도 없이, 적재적소에서 사용되는 장면 전환은 그야말로 신의 타이밍이다. 타고난 감각이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아울러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국가간의 정세를 훌륭히 잡아내어 정치·경제적인 내용을 다루기도 하고, 화학 및 생물학적인 배경지식 및 설정도 눈에 띄는 어긋남이 없다. 뿐만 아니라 배경을 미국으로 하고 있는데도 일본인 작가가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화감이 없다. 심지어 흔히들 아는 미국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갱스터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데도 말이다. 작가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하고, 또 얼마나 천재적인 감각으로 만화를 그려왔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장인의 손길 아래서 마스터피스가 탄생하는 법이란 걸 또 한 번 느낀다.
여러모로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북으로 다 읽자마자 종이책을 사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근데 애장판 3, 4권이 품절이다... 누구 제발 저한테 팔아주세요... Angel Eyes도 사요...) 하지만 역시, 이 작품을 완독한 많은 이들이 그렇듯, 당장 한번 더 꺼내어 다시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다시 본다면 분명 가슴이 견딜 수 없이 저려서 울어버리고 말 것임을 모두가 예감할 것이다. 1권을 펼치는 순간 나오는 Cape Cod, 1985라는 글자만 봐도 슬퍼서 눈물을 주체 못하는데... 어떻게 이걸 다시... 이걸... (그치만 내 서재엔 꼭 모셔놔야겠다... 3 4권 사요...)
애니화가 상당히 잘 된 편이라고 들어서 당장은 애니메이션을 볼 것 같다. 일단 1화는 봤는데 아주 좋았다. 앞부분을 다시 보니 역시 너무 슬펐고... 보면서 지인에게 '이거 애니... 제작진도 진심인 것 같아요' 라고 했더니 지인이 '원래 그렇게 오래된 작품을 애니화하는 사람들은 다 진심인 법이죠' 라고 말했다... 정말 맞는 말이다.........
살면서 이렇게나 가슴을 치고 가는 작품을 여럿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서두에도 썼었다. 그런 흔치 않은 경험을 남겨준 소중한 작품이다. 이 글을 다 쓰고 나서도 한동안은 앓아 누울 것 같다. 애쉬가 그렸던 빛의 발자취를 쫓으며... 사실 이 순간의 벅찬 감정을 담아두고 싶기도 했지만 오래된 작품이다 보니 지금에 와서 함께 읽어주고 이 가눌 길 없는 슬픔을 나눠가져줄 이가 없어서 외로워서 쓴 글이기도 하다... 저랑 바나나피쉬 얘기 해주세요... 정말... 어떻게이런작품이......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나나피쉬 봐주세요... 이미 보셨겠지만...
+)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에이지가 애쉬에게 쓰는 편지같다며 올려주셨던 노래를 남깁니다...
나는 네게 보낼 편지를 썼어
혹시 받아보았니?
내 모든 사랑을 네게 보내
내 뛰는 심장은 네게 속해 있어
너를 찾을 때까지 수없이 걸어왔어
이 불꽃 속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대도
난 내 모든 사랑을 네게 보낼 거야
이 지구 위에서 숨쉬는 모든 호흡마다
난 내 모든 사랑을 네게 보낼 거야
그러니 만약 지금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면
확신해도 돼, 내 모든 사랑은 너를 위한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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